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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창한 날이다.
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새파란 이파리들이 눈에 띈다.
'아... 이제 초여름인가.'
그러고보니 반팔을 입은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.
통유리로 되어있는 가게를 지나며 문득 고개를 돌렸다.
유리에 비추어지는 내 모습.
모자로 대충 눌러쓴 머리. 초봄에 입던 후드티. 몇년 됐는지 기억도 안 날 후줄근한 츄리닝 바지.
그나마 신경쓴 새로 산 신발. 신발 위로 삐죽 올라와 있는 오래된 양말.
사실 난 회사에 다니지 않는 프리랜서이다.
그래서 이런 내 모습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.
언제부터였을까. 외모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게.
10년 전에는 아마도... 티는 안 나지만 꾸미고 다녔을 게 분명하다.
아니 5년 전에도 꾸미고 다녔겠지.
흠... 신기한 일이야.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...?
곰곰히 생각해보니 매일 입에 털어넣던 우울증 약이 있었구나.
지난 5년간은 나 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이었다.
5년간 살도 35kg나 쪘다. 더욱 더 거울을 보기 싫었다.
사진을 찍을때면 저게 내 모습인가 싶었다. 그래서 나 자신을 거부해 왔었다.
나 자신을 사랑하라고?
자존감 높은 사람에게나 통하는 말이다.
밑바닥에서 헤엄치는... 자존감이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나에게 그런 말은 사치나 마찬가지다.
생각을 하면 할 수록 더 우울해졌다.
이럴 때면 무언가를 먹고싶은 욕구가 강해진다.
'돼지같아. 미친 것 같아.'
나 자신을 비하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간다.
"어서오세요."
늘 같은 모습으로 계시는 편의점 아주머니.
간식거리를 기웃거리다가 큰맘먹고 빈손으로 나왔다.
아주머니께서 고개를 갸웃하셨다.
엘리베이터에 타서 내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.
간식 한번 참았다고 조금 날씬해졌나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.
그런 내 모습을 거울로 바라보다가 실소를 터뜨렸다.
아마도 내 행복은 내 몸무게에 좌우되나보다.
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나는 우울하다.
온 세상이 초록빛인데, 길가의 사람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고 있는데.
몸무게 하나로, 부어있는 몸과 얼굴 하나로.
오늘도 우울한 하루의 시작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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